박철수 목사(익산봉곡교회 담임)
이 세상에는 정직과 부 정직, 진실과 거짓 두 가지가 공존하고 있다. 사람들은 이 두 가지 사이에서 갈등하며 인생을 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직하게 살려고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정직과 상관없이 부정직하게 사는 사람도 있고 때를 따라 두 가지 모습으로 사는 사람들도 있다. 어떤 사람은 입만 열면 거짓말을 하며 사는 사람들도 있다. 다 그렇지는 않지만 정치인들 중에 그런 정치인들이 많이 있음을 본다.
우리의 모습은 어떠한가? 우리는 정직한가? 아니면 부정직한가? 성도인 우리는 반드시 정직하게 살아야 한다. 정직한 삶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삶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가 정직하게 사는지 그렇지 아니한지 보시고 계신다. 대상 29:17에 “하나님께서는 마음을 감찰하시는데 정직을 기뻐하신다.”고 말씀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정직하게 살아야 한다. 성도인 우리에게서 정직한 삶이 없다면 그 성도는 진정한 성도가 아니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대상이 될 수 없다. 그리고 그 결과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좋은 것을 받을 수 없는 자가 되고 마는 것이다. 영국 속담에도 “하나님은 정직한 사람의 마음속에 계신다.”라는 속담이 있다. 거짓된 마음에는 하나님이 계실 수 없다는 말이다. 반대로 거짓된 사람의 마음속에는 마귀가 있다는 말이다. 요 8:44에 “마귀는 처음부터 거짓말 장이요 거짓의 아비다.”라고 말씀하고 있다. 따라서 정직한 삶을 살지 아니하고 거짓된 삶을 사는 자는 마귀를 따라 사는 자이다. 그러므로 성도인 우리는 절대로 거짓된 삶을 살아서는 아니 되는 것이다. 따라서 정직은 성도인 우리가 인생을 바르게 사는 최선의 방법인 것이다. 다른 길이 있을 수 없다. 거짓된 길을 갈 수 없는 것이다.
철학자 소크라테스는 “사람이 사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바로 사는 것, 정직하게 사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성도인 우리는 모든 것을 다 잃어도 정직은 잃지 말아야 한다. 정직해야 세상에서도 인정받고 성공의 인생을 살 수 있다. 그리고 정직도, 거짓도, 반드시 백일하에 드러나게 되어있다. 그러므로 거짓된 모습으로는 인정을 받을 수 없고 성공의 인생을 살 수 없는 것이다. 정직은 신앙생활에서 가장 먼저 갖추어야 할 덕목이다. 자신의 양심 앞에, 이웃들 앞에, 하나님 앞에 정직하게 살기를 다짐하자.
도산 안창호(島山 安昌浩, 1878~1938) 선생은 항상 정직을 강조하였다. 선생은 이르기를 우리 겨레가 일본에 나라를 빼앗기게 된 것은 거짓을 일삼아 정직하지 못한 탓이라 탄식하였다. 그래서 선생은 “죽더라도 거짓이 없으라”하였고, “꿈에라도 거짓말을 하지 말라”고 역설하였다. 정직하지 아니하고는 절대로 승리할 수 없다. 절대로 인정받을 수 없다. 정직은 우리의 삶에 가장 기본적인 삶의 자세이다. 정직이 무너지면 기초가 무너진 것과 같다. 모래 위에 건물을 세우는 것과 같다. 따라서 아무리 열심히 건물을 세워도 그 건물은 무너지고 만다. 아무리 열심히 예배를 드리고, 기도를 드리고, 봉사, 충성, 봉사, 헌신, 헌금을 드려도, 정직하지 아니하고, 거짓된 모습으로 살면서 하는 것은 인정받을 수 없는 것이다. 행 5장에 아나니아 삽비라 부부가 땅을 팔아 많은 액수의 헌금을 드리다가 왜 부부가 한 날에 죽음을 당했는가? 하나님을 속이다가 그렇게 되고 말았다. 정직이 이처럼 중요하다. 진정으로 정직한 삶을 회복하자. 주님 앞에 떳떳하게 설 수 있도록 정직하게 살자.
어떤 모습으로 서려고 하는가? 부끄럽고 죄송한 모습으로 서려고 하는가? 계 21: 8 “모든 거짓말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예하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부정직하게 사는 것을 가볍게 별것 아닌 것으로 알면 큰일이다. 정직하게 진실하게 살기를 다짐하고 결심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