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남철 목사(그레이스성결교회 담임)
아내가 숙명 여자 대학교에서 작곡을 전공했고 피아노를 제2 전공으로 했기 때문에 우리 가정은 저절로 음악 가족이 되었다. 아내가 피아노 레슨을 다니고 집에서 자주 피아노를 치고 음악과 관계된 행사에 자주 참여하게 되다보니 아이들도 저절로 음악성이 발달했다. 그래서 어렸을 때부터 큰아들 샘은 바이올린을 공부하고 둘째 아들 스티브는 첼로를 공부했다. 열심히 레슨을 받아가며 했는데 고등학교에 들어오면서 차차 그만 두게 되었다. 큰아이는 기타로 바꾸었고 둘째는 베이스 기타로 바꾸었다. 다시 말하면 자기들이 하고 싶은 것들을 하게 되었다. 그들은 바이올린도 하고 기타도 하고 첼로도 하고 베이스 기타도 할 수 있게 되었다. 특히 둘째는 고등 학교 시절에 밴드부에 있었는데 베이스 기타를 잘 쳐서 그 밴드를 살려 놓을 정도였다. 대학 시절에 블루 진이라는 보칼 그룸을 만들어서 음악 CD를 두 개나 만들 정도였다. 지금은 바빠서 계속 못하지만 뛰어난 음악성을 갖고 있다. 우리 가족들이 모이면 아내는 피아노를 치고 큰 아이는 바이올린을 하고 둘째는 첼로를 하고 나는 트럼펫을 분다. 나는 오현 고등학교 다닐 때에 2년 동안 밴드 부에서 트럼펫을 불었다. 트럼펫 하나 갖는 것이 소원이었는데 미국 와서 쉽게 구입할 수 있었다. 얼마나 가지고 싶었던 트럼펫이던가. 학생 시절에는 평생 못 갖는 악기로만 생각했다. 그런데 미국에 와서 그 꿈이 이루어 진 것이다. 고등 학교 시절 Pan Am 이라고 박힌 트럼펫을 불 때 나는 우쭐했다. 여학생들이 등교할 때 교정 울타리 밖으로 동산을 올라가는 것을 보면 나는 힘차게 트럼펫을 불면서 보아주기를 원했다. 교악대 제복을 입고 행진할 때는 정말로 신이 났다. 나는 미국 와서 그 Pan Am 이라는 것을 구입했다. 그렇게도 갖고 싶었던 것이 두 개씩이나 있다. 하나는 중고이고 다른 하나는 새것이다. 나는 가끔 꺼내서 연습을 한다. 찬송가는 연주할 수 있는 실력이 되었다. 온 식구가 크리스마스 시즌이 되면 한자리에 모여 찬송가를 연주했다. 듣는 사람이 없고 청중이 없지마는 우리 가족이 연주자이고 청중이다. 한 곡이 끝나면 가족들이 서로 박수를 친다. 우리는 모여 악기를 연주하고 또 함께 노래도 부르면서 기쁨과 행복을 느낀다. 행복은 먼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가까이 있음을 자주 경험한다.
동생 가족들 중에는 플롯하는 동생도 있고 피아노를 치는 민우 조카도 있다. 그래서 형제들 가족이 다 모이면 플롯까지 가세해서 찬송을 부를 때 참으로 잘 어울린다. 음악 가족이다. 찬송을 같이 연주하면서 우리는 가족의 깊은 사랑을 함께 나눈다. 그리고 함께 기뻐하고 함께 즐거워한다. 형제들 가족은 모두 음악을 잘 하는 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