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성철 목사(GMS신학교 학장)
지금 한국교회는 교회도 선교도 새로운 변혁이 일어나지 않으면 안 될 위기상황에 놓여있다. 이러한 위기를 극복하고 주님이 분부한 지상명령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지도자들의 생각과 삶의 변화가 하나님의 뜻과 일치되어야 한다고 본다. 브라질을 비롯한 남미 한국인들의 선교는 그다지 알려지지 않았지만 하나님의 섭리속에 1928년 9월20일 조선총독부가 발행한 일본국 조선인 신분의 여권을 가지고 브라질에 입국한 장승호(일명 미다)씨로부터 시작된다. 그후 1956년 중립국을 택하여 브라질에 입국한 반공포로 국적 없는 한인들로 이어 진다. 일본인 아내를 얻고 데릴사위로 들어가 미다라 불리어지는 장승호 평신도선교사는 일본에서 소년시절에 교회에서 차별하지 않고 따뜻한 사랑으로 자기를 영접해준 일본교회에 감사하면서 브라질파송 일본선교사인 존 미스끼(John Mizuki)의 선교사역을 돕기 위해서 이민을 왔다. 또한 중립국을 택하여 브라질에 입국한 반공포로 가운데 강희동 목사, 문명철 목사, 이준희 목사, 강석근 목사, 평신도선교사 백영훈, 이들은 한국에서부터 기독교 가정에서 성장한 사람들로 브라질에 와서 신학을 하고 미국 유학을 다녀 온 리더들로 브라질 교계 깊숙이 들어가 지도자로서 역할과 사명을 다하므로 한국인 선교사들이 브라질에서 선교사역을 큰 어려움 없이 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 주었다. 하나님의 섭리속에 장승호씨는 브라질 최초의 한인 평신도로서 쌍파울에서 일본인 선교사와 브라질에 세워진 일본인교회를 섬겼으며, 강희동 목사는 남부에서, 이준희 목사는 남부지방에서, 문명철 목사는 쌍파울에서 목회자와 교수로 그리고 백영훈씨는 리오 데 자네이로에서 학교사역을 감당했다. 브라질 한국인 선교는 흩어진 씨앗처럼 예수생명을 가진 디아스포라 한인들로부터 시작되었다. 이들에게는 당시 시대적인 상황 때문에 한국인이라는 국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한인으로 사역을 했다. 이들은 선교훈련의 과정도, 파송식도. 후원교회도 없이 전적인 하나님의 계획하심 속에 하나님의 뜻을 따라 주님께서 분부한 선교사역을 수행하였다. 그 후 1961년 12월에 문화 사절단이 입국하여 이민사업을 추진하므로 1962년12월18일 화란 유람선 치차랭카호로 부산항을 출발한 17가구(92명)가 55일이 걸려 1963년 2월 12일에 브라질 산토스항에 도착하므로 브라질 이민의 문이 열렸다. 이 무렵 한성욱 선교사(1964년 9월 3일미국성서감리교선교부파송), 김계용 선교사(1967년 5월 14일 통합장로교 선교부파송), 황문규 선교사(1968년 미국남장로교단파송), 박광자 선교사(1968년 6월 미국그레이스 형제선교회파송), 김성준 선교사(1969년 4월 30일위클리프성경번역선교회파송),양승만 선교사(1968년 3월 예장합동선교부파송)가 한국의 교단과 미국교단 및 선교단체로부터 파송을 받아 한인 선교사로 브라질에 입국하였다. 1963년 4월 15일 쌍파울로에 연합교회가 창립된 이후 현재 45개 교포교회가 세워지면서 교회와 함께 선교사역이 진행되었다. 브라질 및 남미땅은 이민의 역사가 50년이 넘어가면서 부모와 함께 이민온 1.5세 청년들이 이제 60세를 넘어가고 있다. 놀라운 것은 이들 가운데 목사로, 선교사로 헌신하여 선교사역을 감당하고 있는 분들이 브라질만 80여명에 이르고 있다. 남미아태아대학원 개원은 브라질 및 남미선교를 선교적 관점으로 살펴보면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가운데 진행되어온 성령사역임을 새롭게 깨닫게 된다. 지금도 선교의 산 증인들이 생존해 계실 때 모든 자료를 수집하고 정리 정돈하여 한국선교의 롤 모델이 된 선배들의 삶과 사역을 학문적으로 연구하므로 역사성을 보존하며 전수하고자는 목적이 있다. 브라질 및 남미선교는 그 어떤 지역보다 선교사역을 감당하기가 힘들다. 브라질과 남미는 1)카톨릭국가이므로 2) 너무 거리가 멀고 경비가 많이 들어가므로 더 이상 선교사를 파송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로 말미암아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제 우리 선교사는 뼈를 깍는 수고를 해야 한다. 자기 발전이 없이는 선교사역을 더 이상 지탱하기 어렵다는 오늘의 현실을 인정할 수 밖에 없다. 아태아댁학원은 선교 동역자들에게 공간과 시간 그리고 경제적인 어려움을 지혜롭게 펼쳐 나갈수 있도록 방안을 제시하고 함께 모여 공부하고 연구하므로 자기 개발을 할 수 있게 하는데 또 하나의 목적을 두고 있다. 시간과 경비의 절감과 효율적인 자기 개발의 통로가 될 수 있도록 계속 프로그램을 업그레드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열 한번째로 세워지는 남미아태아대학원은 성경의 절대권위와 성령의 인도를 전적으로 의지하고, 동시에 브라질 및 남미의 상황에 적응할 있도록 브라질 및 남미지방학을 깊이 연구하고자 한다.
감사하옵기는 이번 발제강의자는 현장경험이 많은 1.5세 출신들이 자신들의 선교사역지에서 경험한 현장의 실체를 토대로 발제하였다는데 의의가 있다고 본다. 아태아 대학원은 전통적인 캠퍼스 개념은 없다. 대신에 컨소시엄을 이룬 회원 교회와 학교 또는 훈련원과 연구소를 중심으로 선임연구원과 일반연구원이 선교현장과 사역을 과제로, 아카데믹한 학문적인 연구를 하므로 실제적인 사역에 적용하기 쉽도록 하고자 한다. 시작은 어설프고 미약하지만 오늘 아태아대학원을 개원을 하였다는 역사적 의미를 둔다. 남미아태아대학원을 개원할 수 있도록 축복하는 하나님께 감사를 돌리며 장소를 제공하고 물심양면으로 수고해 주신 영광교회 성도들과 당회 장로님들 그리고 선교위원장 김영수 장로님을 비롯한 선교위원들과 김용식 목사님과 영광교회 교역자님들께 감사를 드린다. 바쁘고 어려운 상황속에서도 자경비를 들여 좋은 강의와 함께 남미아태아대학 개원을 축하해 주시며 격려해 주시는 김의원 총장님과 사모님, 김연수 박사님과 성남용 박사님께 감사드리며 귀중한 자료를 공유할 수 있도록 발제강의를 해주신 김용식, 박성흠, 지덕진 장현택, 장화경 박사님들께 감사를 드린다. 또한 함께 기도하고 이 일을 위해 기도해주신 디아스포라 선교회 동역자들에게 감사를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