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숙자 선교사의 선교편지)주의 낯을 어찌 피하랴-3
2015/12/31 18:34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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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숙자 선교사(베데스다교회)
 
하나님은 대수롭지 않게 말해버린 헤롯왕에게서, 입에서 악을 말하는 헤로디아에게서, 세례 요한의 목을 달라는 헤로디아의 앵무새 같은 딸에게서 우리에게 어떤 교훈을 주고 계시는지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묻고 싶다. 그들은 과연 기도는 말고라도 생각하고 말했는가? 말하고 생각했는가? 신앙인의 눈으로 본다면? 기도하고 말했는가? 아니면 기도하지 않고 말했는가? 하는 말이라 할 수 있다. 하나님께 물어볼 수 있는 특권을 과연 우리는 얼마나 누리고 사는지 한 번 자신에게 물어보라. 열왕기하 1장에 난간에서 떨어져 병들었던 아하시아왕이 하나님께 묻지 않고 바알세불에게 물은 일이 생각난다.
 아하시아는 하나님의 극심한 진노를 산다. “이스라엘의 신 하나님이 없어서 에그론의 신 바알세불 에게 물었느냐고 호통치시고 이사야를 통해 “네가 올라간 침상에서 내려오지 못할지라 네가 반드시 죽으리라 하셨다 하라” 우리는 과연 누구에게 물으며 살 것인가? 물어볼 대상을 잘못 선택하면 하나님의 진노를 살뿐 아니라 죽을 수도 있다는 말이 아닌가? 성경은 말한다. “면책은 숨은 사랑보다 낫다고....” 세례 요한은 분명 하나님께 물었을 것이다. 그는 헤롯을 향해 잘못을 지적했다. “옳지않다”라고.... 결과적으로 그는 목이 짤려 소반에 담겨 악인의 손에 들려졌다. 바른 말을 했는데 목이 짤렸다? 그래서 사람들은 세상의 힘을 무서워한다. 그리고 이기주의로 살아가면서 마음의 평안이 없는 지옥에서 살아간다. 세례 요한을 죽인 헤롯이 결코 천국을 맛보며 살지는 못 했을 것이다. 마 10:28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다.
 그는 “옳지 않다” 그말 한마듸 했다가 죽었지만 에그론의 신 바알세불에게 물었다가 죽은 아하시아 왕과는 너무나 대조적인 죽음이란 말이다. 한 사람은 지옥불 속이요 한 사람은 순교자로 하나님의 공의를 들어낸 믿는 자들의 빛이 되어 지금까지도 예수님의 공의를 자랑하고 예수님을 높이고 있다는 말이다. 만일 우리가 세례 요한을 닮고 행한다 해도 문제는 정말 세례 요한의 마음속처럼 사심도, 욕심도 전혀 없었던 것처럼 우리 마음속에도 정말 사심이나 내 맘대로 않된다는 욕심이 없다고 누가 감히 말할 수 있겠는가? 자신을 들여다보는 지혜가 필요할 것이다.유다는 다말을 향해 “네가 옳도다” 세례 요한은 헤롯왕을 향해 “옳치 않다”라고 말했는데 정직하게 죄를 인정한 한 사람은 예수의 조상이 되고, 공의를 외친 한 사람은 가장 영광스러운 순교자가 되었다.
 사실 언제부터인지 난 사람들이 만나기 싫고, 말하기 싫은 우울증 증세가 나타나기 시작 하면서 전화도 받기가 싫었고 사람 모이는 곳을 기피하고 밥맛도 줄고 짜증을 부리며 속에는 불만이 차기 시작했다. 선교사도 그럴 수 있는가? 누군가가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지도자도 때로는 로뎀나무 아래서 마치 소망이 끊어진자처럼 맥을 놓고 있었던 엘리아의 마음이 될 수도 있으나, 중요한 것은 하나님은 그대로 내버려두시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죄 가운데 그릇 계속 가는데도 그냥 버려두신다면 그것이야말로 두려워 해야할 일인 것이다.
 주님만 바라보며 물위를 걷던 베드로가 파도를 보는 순간 물속으로 빠져 들었듯이 주님만 바라보던 나의 눈이 사람을 바라보는 순간 로뎀나무 아래로 추락하고 있었다. 시 42:5 “내 영혼이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네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가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그 얼굴의 도우심을 인하여 내가 오히려 찬송하리로다”라는 말씀을 외우고 묵상하면서 근근히 진품에서 가짜로 진행되려는 영혼을 붙뜰고 안간 힘을 쓰고 있던터에, 우리부부가 다니는 캐나다 한우리교회 담임목사님을 통해서 마침 2015 한국교회가 함께하는 다니엘 세이레(21일) 기도회를 시작한다는 광고를 듣게 되었다.
 순간 가슴이 뭉클해지면서 “그래 매달려야 해, 주님께... 부르짖어야 해, 반드시 첫사랑을 회복해야겠어, 다시 살아나야 해” 회개를 통해 철저히 부서지고 우리부부를 향하신 주님의 계획을 순종으로 이루어야겠다는 생각이 절실해졌다. 마치 불꽃처럼 솟구쳐 올랐다. 주님은 그냥 버려두지 않으셨다.로뎀나무 아래 있던 엘리아 에게는 까마귀를 통해서 물과 떡을 가져다 주셨지만 나에게는 물과 떡 대신에 “21일 다니엘 기도회”를 가져다 주셨다. 폐기처분을 시켜버려도 할 말이 없는 형편 없는 내게 주신 은혜의 동아줄이 아니고 무엇인가? 분명 주님께서 은혜주시려고 우리부부를 부르는 음성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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