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숙자 선교사의 선교편지)사는 길-1
2015/05/02 06:35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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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숙자 선교사(베데스다교회)

캐나다 에드몬톤 한인장로교회를 가려면 우리가 머물고 있는 캘거리에서 족히 3시간을 잡고 끝없이 펼쳐지는 가을을 먹음은 들판을 바라보며 달려야 한다. 브라질 리메이라에 빠르끼 노부문드 브라질 현지인 교회를 지은 분들이 바로 에드몬톤 한인교회의 성도들이여서 선교보고를 통해 교회가 부흥하고 있는지 그 교회를 담당하고 있는 싸미 목사의 꿈이 무엇인지 전달하고 할 수만 있다면 하나님께서 싸미 목사의 주님을 향한 꿈의 답을 가지고 브라질에 돌아가고 싶어서 내 딛은 행보였다. 내친김에 에드몬톤에 살고 있는 큰 아들 가족을 만나는 흥분이 자못 컷다. 선교지인 브라질에서만 거의 살다시피 했기에 자녀를 만나는 일이 쉽지 않았다. 캘거리에 도착하는 날 짐도 풀기 전에 당장에 줄달음질을 치다시피 김장거리를 사다가 밤이 새도록 김치를 담그려 한 이유는 아들 식구들을 기쁘게 하겠다는 마음이 급해서였다. 육신을 혹독하게 부려도 힘들지 않은 일이 무엇인지를 아는가? 그것은 사랑하는 이들을 위해 베풀고 헌신할 때가 아닌가 싶다. 오즉하면 주님은 그 몸을 주시기 까지 사랑하는 우리를 위해 죽으셨으니 누가 감히 주님 앞에서 누구를 위해 헌신했다는 말을 하는 것 조차 부끄러워지는 마음이다. 또 우리는 자녀들에게 이기심을 심어주는 그릇된 헌신이나 잘못된 사랑을 할 때도 있음을 생각해 본다.
 교회에서 주일학교 아이들 간식이 봉사자의 손에서 차려졌다. 꺄쇼호껜찌(쏘세지를 빵에 넣고 소스를 발라 놓은 것)를 먹음직스럽게 만들어 놓았다. 한 어린이가 달려와 한 개를 입에 물고 또 한 개를 손에 잡은 채 먹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홀로 식기도를 하고 먹기는 쉽지 않다. 특별한 가정 신앙교육이 되어 체질화 되지 않은 한은 얼마든지 그럴 수 있는 일이다. 그래서 “신앙은 훈련이다”라고 뉴욕 효신장로교회 M 목사님이 입버릇 처럼 말씀하시곤 했다. 그 아이는 먹으면서도 빵이 두 개 남아 있는 쟁반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아마도 많이 배가 고팠나보다. 마침 빵을 향해 다른 한 아이가 다가온다. 한 손에 여분의 빵을 쥐고 다른 한 손으로 빵을 먹고 있던 아이가 빵이 없어질 위기를 느꼈는지 옆에 있는 엄마에게 “나 아직 배고프다”는 뜻을 전하자 그녀의 엄마가 작고 단호하게 이렇게 말한다. “얼른 잡아” 아이는 엄마의 말에 용기를 낸듯이 다른 손으로 남아 있는 빵을 재빠르게 집었다. 이 그릇된 가르침이 얼마나 아이를 잘못 되게 한다는 사실을 조금도 의심치 않고 그녀는 아마도 여지껏 그렇게 해 왔으리라 상상이 간다. 하나님이 그 엄마의 말을 들으셨고 그 누군가가 지켜보고 있었다. 이를 지켜보던 그 누군가가 무슨 생각을 했으며 하나님께는 어떻게 보여졌을까? 아이는 아직 좌우를 분변치 못하는 연한 순과 같다. 만일 그 엄마가 “넌 두개가 있잖아? 아직도 빵을 먹지 못한 다른 아이들에게 양보해야지 너만 먹으려 하는 것은 옳지 않아”라고 그 순간을 바른 교육을 하는 챤스로 삼았다면? 아이는 연한 순같은 가지에 아름다운 배려라는 꽃을 피워내며 자라갈 것이다. 그릇된 과잉 사랑이 아이의 인격을 망친다는 사실을 우리 모두 기억해야 할 것이다.
 하나님이 제일 먼저 에덴 동산에서 만드신 기관이 가정이다. 그래서 가정은 매우 중요하다. 뿐만 아니라 가족끼리는 서로 사랑하고 용서하고 허물을 덮어야 한다. 교회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하나님이 뜻하시는 바는 거기가 끝이라고 하지 않으신다. 가족이 온전한 가족이라는 이름을 완성하려면 바로 말씀과 교양으로 자녀를 양육해서 상대를 배려하시는 주님을 닮아가게 하는 징검다리의 역할을 부모들이 감당해야 한다는 것이다. 언제인가? 남편이 장로시절에 교회에서 마지막 남아 있는 김밥을 꼴찌로 딸 아이에게 주었다가 다른 아이가 오니까 내가 딸에게서 빼앗아 그 아이에게 준 일이 있었다. 그런데 내 딸이 결혼 전 아픔을 나에게 털어 놓았다. “엄마는 항상 우리들보다 남이야”하면서 어린 시절의 아픔을 되새기면서 몹씨 울었다. 인간적으로 본다면 나도 잘한건 아니지만, “내 아이만 배부르면 된다”는 이기주의의 과잉사랑? 만은 뿌리가 뽑혀야 한다는 생각은 변함이 없다. 주님 자랑좀 하자. 주님은 자신을 생명의 빵으로 우리에게 내어 주시고 급기야는 십자가에서 자신을 내어주신 분이다. 그 분을 진정 믿는다면? 그 분이 기뻐하시는 일이 무엇인지 생각지 못한 채 행한 우리의 행동은 “난 믿음이 없어요” 라는 고백이 아닐까 한다. 대부분의 교인들이 구원의 이르는 믿음은 물론 있다. 그러나 주님은 생활의 믿음을 보이면서 살라고 우리에게 요구하신다. 조심스럽게 나의 생애에 선택의 갈림길에 서서 우리 부부의 답을 요구하신 세 가지 일로 인해 주님을 자랑하고 싶다. 첫째는 자녀를 택할것인가? 아니면 주님을 택하겠느냐? 물으셨다. 둘째는 미국 영주권을 택할 것이냐? 아니면 주님을 택할것이냐? 물으셨다. 셋째는 노후대책이 보장된 캐나다를 택할 것이냐? 아니면 하나님의 사역을 계속하기 위해 브라질을 택할 것이냐? 라고 물으셨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주님을 기쁨으로 택하게 하셨다. 할레루야!!!!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었는가 물는다면? 백 프로 주님이 우리 부부의 마음을 사로잡아 주셨기에 주님을 택할 수 있었다고 자신 있게 대답하며 주님을 자랑할 수 있다. 오늘 이 시간도 부족한 우리 가족에게 그때 주님의 질문에 주님이 기뻐하실 대답을 드리게 하신 나의 주, 나의 전부이신 주님을 찬양하며 감사와 영광을 올려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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