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찬성 목사(브라질선교교회 담임)
유권사님! 한국에는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모든 문제들이 선거블랙홀에 빠져서 다른 시급한 문제들은 다 정지되어 있는듯 합니다. 거리마다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는 여지없이 후보자 유세차량이 시끄럽게 오가고 있습니다만 정치 불신 사회의 소음처럼 시끄럽기만 했습니다. 그분이 그 사람이지! 하는 자책부터 다음 사람이라고 뭐 임기나 채우겠어? 하는 불신감이 스멀스멀 사람들의 마음에 자리 잡는 것 같았습니다.
아버님, 장인어른 잘 다녀오겠습니다.
그런 가운데 브라질 귀임을 얼마 앞둔 정목사 부부는 이번 주도 강행군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아흔셋 양가 어른들께 하직인사 드리기, 병원에서 처방전 받아 약 받기, 그리고 한국에서 꼭 가보고 싶었던 곳, 강화기독교역사기념관 방문입니다.
강화 양진교회 최훈철 목사가 목회로 바쁜 가운데도 박물관 책임을 맡고 있는 터라 미리 연락을 취하고 방문했습니다. 지자체인 인천광역시 강화군이 강화군의 기독교인들에게 그 기념관을 지어 자체적으로 운영할 수 있도록 권한을 위임한 것입니다. 강화지역은 독특하게 감리교와 성공회가 대부분인 지역인지라 두 교회가 중심이 되어서 다른 교단들의 협조를 얻어 이 기념관을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당연히 기념관에 전시된 유물들도 성공회와 감리교회가 기증한 것들이 대부분입니다. 선조들의 신앙흔적들을 기증하겠다는 이들이 많이 있으나 강화지역에서 태어났거나 활동한 이들의 유물을 우선하고 있어서 많은 이들이 실망하고 발걸음을 돌리고 있어 안타깝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니까 그 정체성을 찾아보면 “강화+기독교+ 역사+기념관”입니다. 130여년의 강화기독교 역사 속에서 기독교신앙을 부여잡고 씨름하고 감격하고 인내했던 흔적이면 기념관에 전시가 가능하다는 말씀입니다.
기념관 측은 강화복음화의 시작을 1893년 감리교회와 성공회에 의해서였다고 보고 있습니다. 성공회는 고종황제의 요청으로 영국인 교관인 코웰 대위와 커티스 부관을 통제영학당(해군사관학교)에 초청해서 외세에 맞서 한국 해군의 세계화를 실현하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머물던 숙소가 오늘날 강화 성공회 선교의 바탕이 되었습니다.
한편 감리교회는 강화서쪽 시루미에 인천내리교회 존스 선교사가 강화출신으로 인천에서 살던 이승환의 어머니 겨자씨 할머니에게 선상에서 세례를 베풀면서 감리교회 선교가 시작되었습니다. 그것이 오늘날 교산교회입니다. 성공회는 양반계층에게 복음을 전하는데 주력했고, 감리교회는 “한 동네 한 교회 한 학교운동”를 펼치며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해서, 오늘날 군단위에 130여개의 감리교회가 선교하고 있습니다.
기념관에서 출발하는 일곱 개의 순례길
한 마을에 교회가 두 개가 있다면 그것은 교회분열의 역사가 있었음을 반증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조상들의 신앙운동의 흔적이 강화기독교역사기념관 수장고에 모아들이고 그것을 기록하고 조사하고 평가해서 자료의 가치를 객관화하고 전시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 기준은 향토성과 강화지역의 지역성을 중시해서 유물의 가치를 평가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아무리 국보급 문화재라고 하더라도 강화지역의 지역성과 관련이 없으면 전시되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이 기념관의 산파역할을 감당한 최훈철 목사는 한국기독교 전체 역사 속에서 강화의 기독교를 객관적으로 평가하는 일과 함께 강화지역에만 나타나는 기독교 신앙운동에 초점을 두고 기념관을 운영하고 있다면서 강화지역 기독교 인물사전이나 특별기획전을 통해서 균형 있는 기념관의 현주소를 확인하겠다는 포부를 밝혔습니다.
유권사님, 강화를 방문하는 많은 이들은 우선 기념관에서 전체적인 유물을 보고 설명을 들은 후에 직접 지도를 들고 강화를 돌아보는 기독교 순례길을 만들어 실행하고 있었습니다.
로다선교사 길(갑곳지역), 존스선교사 길(교산지역), 종순일과 로스 선교사 길(온수리지역), 박능일 선교사 길(강화북부지역), 이동휘 권사 길(중부지역), 김희준 마가 길(석모도 지역), 권신일 선교사 길(교동지역)이 그것입니다. 제 고향 강화 기독교 130년 역사가 기념관에서부터 각 지역의 신앙순례길로 이어져 있어 감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