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용주 목사(봉헤치로 제일교회 담임)
아슬란(5): 독점적 관계
『나니아 연대기』 중 아슬란과의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 잘못을 온전히 인정하는 태도, 즉 자기부인이다(마 16:24). 자기 자존심과 욕망을 온전히 내려놓고 부인하지 않는 동안에는 아무 것도 해결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슬란이 자기부인을 요구하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또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그와 관계를 맺을 때 그에게만 집중하라는 것이다. 즉, 그와 독점적인 관계를 맺으라는 것이다. 그가 독재자여서?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이다. 그와의 관계가 독점적이라는 것은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일 뿐, 핵심이 아니다. 핵심은 사랑이다. 사랑은 서로 독점적인 관계를 요구한다. 그렇기 때문에 상대방의 배신에 대해 분노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슬란이 요구하는 것은 지금, 그와 함께 하는 시간에, 그와의 관계에 충실하는 것이다. 그래서 ‘만약 그 때 이렇게 하지 않고 저렇게 했더라면?’과 같은 질문은 그에게 의미가 없다. 주어진 현실에서, 그가 맡기는 일을, 그와 함께, 기쁘게 그리고 성실하게 하면 된다.
아슬란과 이러한 관계는 필연적으로 다른 사람에 대한 호기심을 배제할 것을 요구한다. 그가 자기가 사랑하는 모든 아이들에게 자주 하는 말이 있다. “다른 사람의 일은 신경 쓰지 말아라. 그것은 나와 그 사람 사이의 일이다. 나는 지금 너와 이야기하고 있단다.”
『나니아 연대기』 제 3권 「말과 소년」에서, 주인공 샤스타는 아슬란에게 친구 아라비스에 관해 묻는다. 그러자 그는 이렇게 대답한다. “얘야, 나는 그 아이가 아니라 네 이야기를 하고 있다. 나는 언제나 당사자 이야기만 하지.” 또 아라비스는 자기 양어머니의 노예가 앞으로 당할 고통에 대하여 아슬란에게 묻는다. 이 때의 대답도 똑같다. “얘야, 나는 그 아이 이야기가 아니라 네 이야기를 하고 있다. 누구나 자기 이야기만 들으면 되는 거야.”
그런가하면 제 5권 「새벽출정호의 항해」에서, 이제 다시는 나니아에 올 수 없다는 말을 들은 루시는 사촌 유스터스에 대해, 그는 다시 올 수 있는지 묻는다. 이 때에도 아슬란은 이렇게 답한다. “얘야, 네가 그것을 꼭 알아야 하겠느냐?”
이것이 바로 성경이 줄곧 보여주는 예수님의 성격이다. 부활하신 후 어느 날, 예수님께서는 갈릴리 호수에서 물고기를 잡던 제자들에게 나타나셨다. 하루 종일 허탕만 치던 제자들이 갑자기 153마리나 되는 물고기를 잡게 하셨다. 그 후, 자신을 세 번 부인한 베드로의 마음을 회복시켜 주시면서 자신의 교회를 돌보라는 일을 맡기셨다. 이 때, 그는 옆에 있던 요한에 대하여 물었다. “주님, 이 사람은 어떻게 되겠사옵나이까?” 그러자 이렇게 대답하신다. “네가 무슨 상관이냐? 너는 나를 따르라.”
예수님께서는 우리 개개인과 독점적인 관계를 원하신다. 사랑의 관계이기 때문이다. 베드로의 영혼을 회복시키실 때 하신 질문이 바로 그것이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베드로가 그렇다고 하자, “그렇다면 내 양을 쳐라” 하셨던 것이다.
예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오직 그 분만 바라보는 것이다. 그리고 그 분과의 관계에 충실한 것이다. 일어나지 않은 가상의 일이나 옆 사람들에 대한 쓸데없는 호기심을 가지지 않는 것이다. 그럴 때 비로소 예수님께서는 자신과 함께 할 일을 우리에게 맡기시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