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찬성 목사의 복음자리 이야기)정월 초하룻날을 맞으며
2023/01/26 21:45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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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찬성 목사(브라질선교교회 담임)

 

 유권사님, 오늘이 정월 초하루이며 주일입니다. 자손들과 오손도순 떡국잔치를 하셨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곁에 사는 큰 아들 내외와 도시에 나가 사는 둘째, 그리고 시어머니가 된 따님 등이 한데 모이는 정월입니다. 따님은 자기가 거느리는 가정이 있어서 늘 미리 오거나 한 박자 늦게 합류하는 모습이 참 보기 좋았습니다. 

 제가 정월 초하루에 항상 생각나는 것은 음력 섣달그믐에 제 아버지를 비롯한 시골 분들의 “묵은세배”입니다.

 빚진 것 돌려막기도 섣달그믐에 해야 할 일

 정월 초하루에도 각박한 이민사회는 브레이크 없는 기관차처럼 앞을 향하여 달려가도 모자라는 판에 무슨 격식을 갖춰 ‘묵은세배’를 하느냐고 항변하실 분들이 많을 것입니다. 작년에 진 빚이나 서운했던 것, 무릎맞춤으로 해결할 문제가 이웃 사이에 있다면 이 묵은세배를 통해서 이웃 사이의 해묵은 것들을 풀었습니다. 그리고 가부장제 농촌마을에서 묵은세배를 통해서 풀지 못하는 것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유권사님, 제가 어릴 적에 시골 강화도에 살 때에는 빚에 시달려 야반도주(夜半逃走)하는 일이 종종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정도 성의만 보이면 섣달그믐 묵은세배를 통해서 다 해결하는 전통이 있었습니다. 묵은세배는 두 가지를 충족해야 했습니다. 해결할 사람이 찾아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섣달그믐이니 새해에 모든 것을 돌려 묶어 달라고 부탁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내가 누구에게 1억의 빚을 지고 야반도주했다고 칩시다. 

 그런데 갚을 수 있는 돈이 1천만 원 밖에 준비할 수 없다고 칩시다. 그러면 섣달 그믐날 찾아가서 1천만 원을 내놓고 돌려막아 달라고 하면 사정을 들어보고 시간을 연장해주거나 빚을 탕감하는 그런 제도입니다.

 온고이지정(溫故而知情)과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

 돈 뿐만 아니라 모내기 할 때 서로 물대기하다가 싸운 묶은 감정도 평소에 그때그때 해결하면 좋겠지만 최악의 경우 섣달 그믐날에는 풀어야 새봄에 함께 농사를 지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안 풀고 넘어가면 오히려 동네 사람들이 품앗이도 안하는 그런 모진 결정을 하곤 했습니다. 한해 농사를 혼자 한번 지어보면 공동체의 품앗이가 얼마나 귀한 줄을 깨닫게 되고 마을에서 혼자가 된다는 외로움이 어떤 것인지를 알게 됩니다. 물론 도시에서는 상상도 못할 옛날 시골에서의 이야기이긴 합니다. 온고이지정(溫故而知情)이란 말은 “옛것을 살피고 생각하며 그리는 정”이란 말입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은 옛것을 익히고 그것을 미루어 새것을 안다는 뜻이 있습니다. 혹시나 새해가 되었는데도 아직도 과거에 얽매여 있다면 선조들의 이야기를 마음에 새기며 새해를 시작하는 성도가 되길 간절히 바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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