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명 목사(나누리나누리선교회장)
지난 수요일 아침에 치과를 다녀오다 지하철에서 가위와 옷걸이를 파는 중년 나이된 사람들을 보면서 30년 전 한국에서 좌석버스를 타고 출퇴근을 할 때 버스에서 자주 물건을 사준 생각이 났다. 아침보다 퇴근할 때 버스를 타면 일주일에 한 두 번은 버스 안에서 물건을 파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다. 두툼한 가방을 들고 차에 탄 후, 먼저 운전기사에게 가서 물건을 좀 팔아도 되겠느냐고 허락을 받는다. 어떤 운전기사는 선선히 응해 주는데 가끔씩 안 된다고 다음 정류장에서 내리라고 하는 기사도 있다. 그럴 때 나는 속으로 “야! 인정머리 없는 사람아! 좀 허락하면 어떤가! 다같이 어렵게 벌어먹고 사는 처지인데”하는 생각이 들었다. 언젠가 조용한 낮 시간에 운전기사에게 “왜 그런 사람들에게 물건 좀 팔라고 하지 거절하느냐”고 했더니 “아! 선생님 말도 마세요. 하루에도 여러 명이 오르락내리락 합니다. 그냥 가기도 힘든데 그 소리 듣노라면 아주 피곤합니다”하는 것이다. 그 소리를 듣고 보니 “그도 그럴 것이다”하며 조금은 이해가 되기도 했다. 그래서 어떤 장사꾼은 드링크 한 병을 운전기사에게 상납한 후 양해를 구하니깐 두말없이 허락해 주는 것을 보면서 “역시 사람은 무엇을 받으면 약해지는 구나하며 그 사람 참 지혜롭다”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나는 그때 1,000원짜리 한 장을 주고는 여러 가지 물건을 샀다. 그때 산 물건이 아이들 장난감에 볼펜 몇 자루와 병 따는 기계 같은 것들로 한 봉지 두툼하게 받았다. 내가 그때 그 물건을 사준 것은 순전한 동정심과 용기를 주기 위해서였다.
어느 날 20대쯤 보이는 젊은 사람이 버스 안에서 열심히 상품을 선전하였는데 사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다. 좌석버스 통로를 두 번 왔다 갔다 하는데도 아무도 사는 사람이 없었다. 그는 물건을 가방에 넣고는 옆에 자리가 있는데도 앉지 않고 서서 다음 정류장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그때 그의 뒷모습을 보며 “너무 안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저 나이에 버스 안에서 큰 소리로 물건을 사라고 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얼마나 창피한 일인가” 그리고 드링크 한 병도 운전기사에게 투자했는데 말이다. 나는 젋은이를 불렀다. “여보시오! 청년 그것 하나 주시오!” 나는 나도 모르게 큰 소리로 그 사람을 부르면서 1,000원을 내밀었다. 그는 얼른 물건을 주고는 고개를 끄덕하며 “선생님, 감사합니다”하는 것이었다. 그때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나도 하나 나도 하나”하여 여러 사람에게 물건을 팔게 되었다. 모두가 사주고 싶었는데 용기가 나지 않았던 것 같았다. 버스가 정류장에 도착하여 문을 열자마자 나에게 “선생님, 감사합니다. 운전기사님 감사합니다” 큰 소리로 인사하고는 힘 있게 내리는 모습을 차창 밖으로 보았다. 표정이 밝았다. 가방을 꼭 쥐고 다음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젊은이, 힘 있게 살게나”하며 속으로 기도했다. 집에 들어와 반기는 아이들에게 그 선물을 주었다. 아이들은 “야! 선물이다. 아빠가 선물 사왔다” 그렇게 기뻐하는 모습을 보며 또 아내가 같이 반가워하는 그 모습에서 “내가 오늘 아주 좋은 일을 했구나”하는 생각에 그 밤이 그렇게 기쁠 수가 없었다. 잠언서 19장 17절 말씀에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호와께 꾸이는 것이니 그 선행을 갚아 주시리라”하셨다. 비록 1,000원 한 장의 돈이었지만 하나님의 긍휼의 마음으로 그에게 베풀었더니 그 청년에게 다시 용기를 주게 되었고 내 아이들과 아내에게는 고마운 아빠로 나 자신에게는 기쁨으로 되돌아온 것이다. 나는 그때 일을 생각하면서 그 후로 자주 버스 안에서 장사꾼들의 물건을 사주게 되었다. 비록 그 물건이 조잡하고 얼마 쓰지 못해 낭비가 되었더라도 돈보다 더 귀중한 것을 주기 때문이다. 선행은 마음이지 물질이 많고 적고의 문제가 아니고 언제나 내 생활에서 나타나져야 된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