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란 무엇인가?)기독교의 본질-53下
2019/08/15 22:42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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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주성결교회 양성환 선교사(오레곤선교교회 파송)
 
먼 여행을 떠나는 남편이 돌아올 때까지 자신을 기억하도록 아내에게 반지를 주는 것과 같이 그리스도 자신이 영광 가운데 돌아올 그날까지 자신을 회상할 표지를 교회에 남겨두셨다고 보았다. 츠빙글리는 성찬문제로 루터와 담판을 벌였으나 접촉점을 찾지 못하고 결별하게 된다. 칼 바르트는 성례전을 전통적인 의미에서 은총의 수단으로 보지 않고 기념과 상징으로 본다. 그런 의미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의 행동 만이 성례전이며 교회 안에서 행해지는 의식으로서 성례전은 하나님의 행동에 대한 인간의 윤리적 응답의 행동이라고 보았다.
 마) 칼빈-칼빈은 루터와 츠빙글를 중재하기 위해서 중립적이면서 독창적인 성령론적 성찬론을 제시하였다. 그는 루터처럼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에 실제적인 본질에 진정으로 참여하는 자들이 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하늘에 계시는 그리스도가 직접 성만찬에 임재하는 것은 아니라고 츠빙글리의 입장에 동조했다. 여기서 나온 칼빈의 대안은 성령을 통해서 그리스도는 성찬에 임재하는 것이다. 칼빈은 성령을 통해서 그리스도는 성찬에 임재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성례전은 성령의 능력이 없이는 조금의 유익이 없다는 주장이었다. 칼빈의 성령론적인 중재안은 기독교의 성찬논쟁에 있어서 중재안을 제시하였으며 이것은 미신적인 화체설과 츠빙글리의 기념설의 문제를 동시에 극복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우리는 성례전을 지나치게 직접적인 신적 행동으로 간주해서도 안되지만 전적으로 인간적인 행동으로 보아서도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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