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철수 목사(익산봉곡교회 담임)
오래 참는 것은 인내의 열매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인내는 잠간 동안 참는 것이 아니라, 한두 번 참고 마는 것이 아니라 끝까지 참는 것, 오래 참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참는 것, 쉬운가? 쉽지 않다. 어려운 것이다. 그것도 오래 참는 것은 더욱 어렵다. 결코 쉽지 않은 것이다. 내 의지나, 내 힘으로 오래 참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렇지 아니한가? 자신은 과연 오래 참는가? 오래 참기는 커녕 잠간도 참지를 못한다. 단 한 번도 참지를 못하여 얼마나 자주 분노를 터트리는가? 그 결과 일을 그르칠 때가 얼마나 많은가? 따라서 성령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성령의 사람만이 오래 참음의 열매를 맺는 것이다.
특별히 한국 사람들은 잘 참지를 못하는 국민성을 갖고 있다. 조급증이 많은 국민성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무조건 빨리 빨리 해야 한다. 요즘 세계인들의 눈에 비친 한국인의 모습은 조급증일 것이다. 이러한 조급증이 신앙생활에서도 나타난다. 기도는 열심히 하지만 하나님의 응답을 오래 기다리지 못한다. 그래서 쉽게 포기하고 낙심하고 만다. 또한 교회 안에서 작은 갈등이 있어도 참지를 못한다. 그 결과 성도간의 관계가 깨어지고 마는 것이다. 참지 못할 때 나오는 특징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원망이다. 인내가 부족한 사람의 특징이 바로 쉽게 원망하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를 지나면서 걸핏하면 하나님을 향하여 원망하고 지도자 모세를 원망하였다. 그 결과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를 유리방황하며 40년을 헤매고 말았다. 인내하지 못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오래 참음으로 원망하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은 오래 참으시는 분이시다. 롬 9:22에 “하나님은 오래 참음으로 관용 하신다.”고 말씀하신다. 그처럼 오래 참으심으로 우리가 구원을 받게 되었고 은혜가운데 살고 있는 것이다. 만약 하나님께서 오래 참으시지 아니하셨다면 어느 누가 하나님 앞에 설 수가 있겠는가? 오래 참으심으로 우리를 대하시기에 우리가 은혜가운데 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도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을 본 받아야 한다.
가정에서 오래 참음의 열매를 맺어야 한다. 이 시대 많은 가정들이 깨어지는 이유가 무엇인가? 여러가지 이유가 있지만 그 중에 하나가 바로 인내하지를 못하는 것이다. 상대방의 잘못을 용납하지 못하고 상대방을 기다려 주지를 아니한다. 결국 쉽게 갈라서버리고 마는 가정들이 많은 세상이 되고 말았다. 진정으로 성도의 가정에서 오래 참음의 열매를 맺어야 한다. 이웃과의 관계에서도 오래 참음의 열매를 맺어야 한다. 성도인 우리가 오래 참아야 한다. 교회 안에서 성도들과의 관계에서도 오래 참음의 열매를 맺어야 한다. 참는 자가 되어야 한다. “참는 자가 복이 있다”는 세상 속담도 있다. “하루를 참으면 열흘이 편하다”는 속담도 있다. 분노의 감정이 일어날 때 참아야 한다. 오래 참아야 한다. 만약 참지 못하면 일을 그르치고 만다. 성경에 실패자들을 보면 참지 못해서 실패한 것이다. 가인이 분노의 감정을 참지 못해서, 동생을 처서 죽이는 살인자가 되었다. 모세가 백성들이 원망하고 불평할 때 참지 못하고 혈기를 부리다가 그만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를 못했다. 따라서 분노의 감정이 일어날 때, 오래 참아야 한다. 그러면 승리할 수 있다.
가정에서, 이웃과의 관계에서, 교회 안에서 오래 참음의 열매를 맺자. 오래 참음의 대가라고 할 수 있는 사람, 욥을 들 수 있다. 그야말로 견딜 수 없는 고난을 연속해서 당했지만 끝까지 믿음을 포기하지 않고 지키며 하나님의 주권에 순응하며 승리한 인내의 모델이다. 그래서 야고보는 욥의 인내를 예를 들고 오래 참음의 본을 삼으라고 촉구하고 있다. 오래 참음의 열매를 맺는 삶을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