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용주 목사(봉헤치로 제일교회 담임)
모피어스를 만나다(2)
자, 이제 네오가 모피어스와 만나는 장면의 의미를 성경적으로 바라보자. ‘네가 여기 온 것은 무엇인가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 말로 정확하게 설명할 수는 없지만, 이 세상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야.’ 하나님께로부터 난 참 구원을 받은 사람은 부르심을 입기 전부터, 뭔가 자기가 이 세상에 속하지 않은 이상한 존재라는 것을 느끼게 되어 있다. 뭔가, 세상 모든 것이 이 세상이 제공하는 철학과 이치로 설명이 안된다는 느낌, 뭔가 들어맞지 않는다는 느낌, 마치 이방인과 같은 느낌인 것이다.
왜 그런가? 매트릭스 때문이다. ‘매트릭스는 모든 곳에 있어. 우리 주변, 바로 이 순간 이 방 안에도. 창밖을 볼 때에도, 텔레비전을 볼 때에도, 일하러 갈 때에도, 심지어는 교회에 갈 때에도 있다.’ 그러므로 이 영화에서 말하는 매트릭스란 바로 ‘이 세상’이다. 하나님의 구원으로 선택 받은 사람은 이 세상에 대하여 이질감을 가진다.
자기 세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자기가 속한 곳이 아니기 때문이다. 딱히 말로 설명할 수는 없지만 그런 생각이 계속해서 들고, 갈수록 커진다. ‘매트릭스는 네 눈 앞에 놓여 있는 세상이야.’
이러한 세상은 단 하나의 목적을 위해 존재한다. ‘진실로부터 네 눈을 멀게 하려는 목적.’ 무슨 진실로부터? ‘세상에 태어나는 모든 사람은 노예라는 진실, 느끼지 못하고 만지지 못하는 감옥에 매여 태어났다는 진실, 영혼이 갇혀 있다는 진실.’ 물론 모든 사람이 노예로 태어난다는 것은 죄의 노예로 태어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세상은 사람들이 그 사실을 못 보게 하고, 인식하지 못하게 한다. 그러므로 이러한 세상에 속하여 사는 것이 즐겁고 행복하다면, 그는 죄의 노예이자 감옥에 갇혀 있는 죄수이면서 즐겁고 행복한 상태에 있는 것이다. 몸만 그런 것이 아니라 영혼과 모든 감각이 이 세상에 묶여 있으면서 그것이 자기를 즐겁고 행복하다고 느끼게 해 준다는 상태에 있는 것이다. 뭔가 이상한 상태가 아닌가?
하지만 바로 그것이 이 세상에 속한 사람들, 즉 죄인들의 상태라고 성경은 말한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요 8:34).” 그러나 이러한 진술만 가지고는 이 세상의 실체를 알 수 없다. 하나님께서 구원하시고자 하는 사람도 이 세상에서, 이 세상의 본성을 가지고 태어났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가 자기 두 눈으로 직접 봐야 한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한다. “너희 자신을 종으로 내주어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혹은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혹은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느니라(롬 6:16).”
그것이 바로 ‘두 알약 순간’이다. ‘이 순간 이후로 되돌아가는 길은 없다.’ 구원을 받으면, 그 순간 온 세상을 적으로 돌리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너희가 이 세상에 속하였으면 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것이나 너희는 이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내가 너희를 이 세상에서 택하였기 때문에 이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요 15:19).”
이 세상의 것을 포기할 각오도 없이 기독교인이 되려는가? 모피어스의 말을 다시 한 번 되뇌어보자. “기억해. 내가 너에게 제공하는 모든 것은 진실이야. 다른 어떤 것도 아니야.” 그렇다. 진실은 값을 매길 수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