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용주 목사(봉헤치로 제일교회 담임)
아슬란(6): 가장 소중한 것
아슬란과 함께 한다는 것은 오직 그만 바라보는 것이다. 그리고 그와의 관계에 충실한 것이다. 일어나지 않은 가상의 일이나 옆 사람들에 대한 쓸데없는 호기심을 가지지 않는 것이다.
그러려면 그를 날마다 더 알아가야 한다. 자기를 사랑하는 이들에게 스스로를 더 많이 알리기 위해, 아슬란은 그들이 수행해야 하는 과제를 제시한다. 그리고 이 과제를 잘 수행할 수 있도록 그들을 모든 속박에서 자유롭게 해주고, 과제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여러 가지 일을 겪게 한다. 그러다 보면, 그들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성장을 경험하게 된다. 아슬라는 그들이 자기와 함께 과제를 수행하며 그 과정을 통해서 성장하기를 원한다. 물론 아슬란은 그들이 하루아침에 성장하게 할 수도 있지만, 그가 원하는 방식은 동행이다. “나의 사랑, 내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아 2:10).”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엡 4:15).”
그런데 여기에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이 발견된다. 우리는 모두 크기가 고정된 사물에 둘러싸여 살기 때문에, 우리가 점점 자라가면 주변 사물은 점점 작아지게 된다. 어렸을 때 널따랗게 보였던 운동장이 어른이 된 후 다시 가 보면 좁다랗게 보이는 것과 같다. 그러나 아슬란은 그렇지 않다. 우리가 자랄수록, 그는 더욱 커 보인다.
제 4권 「캐스피언 왕자」에 이런 장면이 있다. 나니아에 돌아온 루시가 그를 만나 “그동안 더 커지셨네요” 하자, 그는 “어린아이야, 그건 그동안 네가 더 나이를 먹었기 때문이란다.” 하고 말한다. 그러자 루시가 반문한다. “아슬란님이 커지신 게 아니고요?” 아슬란은 루시에게 이렇게 답한다. “난 그대로다. 그러나 네가 한 살을 더 먹을 때마다 너에게는 내가 그만큼 더 크게 보일 거야” 하고 답한다.
아슬란은 무한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가 그에 대하여 더 알게 되고 더 깨닫게 될 때, 이전에 보지 못했던 아슬란의 지혜와 권능의 더 큰 측면들을 보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그에 대하여 더 많은 부분들을 알게 될수록, 그만큼 그가 더 커 보이게 되는 것이다.
우리의 기도를 예로 들어보자. 우리가 어렸을 때, 예수님께 하는 우리의 기도는 좋아하는 장난감을 구하는 정도이다. 예수님께 대한 우리 지식이 그 정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이를 먹고 어른이 될 수록, 우리는 좀더 크고 진지한 것을 구하게 된다. 예수님께 대한 우리 지식이 그만큼 성장한 것이다. 그리고 그런 기도에 응답을 받으며 살아가는 동안, 그런 것까지도 적시에 정확하게 응답하시는 예수님은 우리가 어렸을 때 알았던 것보다 훨씬 더 위대하시고 전능하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우리가 자랄수록, 예수님이 점점 더 커 보이시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 때 그냥 지나치지 말아야 할 사실이 있다. 아슬란을 알아가는 이들은 자기들이 스스로 연구해서 그를 알아간 것이 아니라, 아슬란이 그들에게 자신을 계시하고 여러 상황을 겪게 하였기 때문에, 심지어 그가 침묵하거나 나타나지 않는 것을 통해서도, 그를 알아갔다는 것이다.
더 중요한 것은, 그가 계시하는 것은 그들이 알고 싶어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생각할 때 그들이 꼭 알아야 할 필요가 있는 사실이라는 것이다. 꼭 알아야 하는 것이 그들에게 가장 소중한 것이기 때문이다. 비록 그것이 그들이 좋아하지 않는 것일지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