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용주 목사의 문화탐방)나니아 연대기: 구원 그 이후 3
2023/12/15 01:55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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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용주 목사(봉헤치로 제일교회 담임)

 

 아슬란(1): 나니아의 창조주

 “그래서 너희를 나니아로 데려온 거야. 여기서 나를 조금 알아서, 너희 세계에서 나를 더 많이 알게 되도록 말이다.” 그렇다면, 『나니아 연대기』 7권을 관통하는 중심인물 ‘아슬란’은 자신의 무엇을 알리고 싶은 것일까? 왜 알리고 싶어하는 것일까? 그리고 왜 우리는 그가 알려주는 대로의 자기 자신을 알아야 하는 것일까? 물론, 『나니아 연대기』는 이런 질문들과 상관없이 이야기 자체의 재미로 읽혀도 좋은 작품이다. 하지만 중심인물인 아슬란이 그가 나니아로 데려온 아이들에게 이렇게 말했다는 것은, 바로 거기에 작품 전체의 주제이자 작가의 의도가 숨어 있다는 뜻이다. 

 나니아의 아슬란은 누구인가? 첫째, 그는 나니아의 창조주이다. 그는 노래로 나니아를 창조하고, 그 땅의 바다와 숲과 대지에 살 백성으로 ‘말하는 동물’들과 일반 동물들을 창조한 후, 그들이 자유로운 백성으로 살며 말하지 못하는 일반 동물을 보호하고 도울 것을 명한다. 그리고 그 자신이 그들과 같은 ‘말하는 사자’의 형상을 취한다. 그는 또 나니아 땅 한가운데에 ‘생명 나무’를 심은 후, 그것으로 나니아의 모든 생명체를 보호하게 한다. 그러므로 나니아에서 아슬란을 아는 것은 그의 창조 정신, 즉 보다 약한 생명체를 보호하고 돕는 ‘자기 부인’의 마음을 가지는 것이고, 그가 심은 생명 나무를 통하여 풍성한 생명을 얻어 누리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루이스의 ‘가정’에 의하면, ‘아슬란’을 조금 아는 것이다. 나니아에서 말하는 사자의 형체로 나타난 것은 다름아닌 성자 하나님 자신이시다. 우리 세계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형체로 나타나신 바로 그 분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세계의 성자 하나님을 아는 것이 그에 대해 더 많이 아는 것이 된다. 

 사도 바울은 우리 세계의 아슬란, 즉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빌 2:5-7).” 

 나니아의 아슬란과 같이, 예수 그리스도는 또한 우리 세계의 ‘창조주’이시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요 1:1-3).” 

 그런데 이 모든 것이 우리와 무슨 상관이 있을까? 빌립보서는 우리에게, 자기 본연의 형체를 비우고 종의 형체를 취하신 성자 하나님의 ‘자기 부인’의 마음을 품으라고 한다. 또 요한복음은 우리에게, 성자 하나님의 성육신을 보고, 그로부터 은혜를 받아, 그 이름을 믿어, 영원한 생명을 얻으라고 한다. 

 둘째, 나니아의 아슬란은 구세주이다. 

 그는 자신이 창조한 나라가 거대 악에 노출되고 멸망에 이르게 되자, 자신의 생명을 바로 그 거대 악 앞에 내어 놓는다. 악마가 뭐라고 떠들든, 얼마나 기고만장하게 그를 조롱하든, 그는 가장 연약한 고양이처럼 잠잠했다. 그는 나니아와 그 백성과, 그가 나니아로 데려온 우리 세계 아이들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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