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찬성 목사(브라질선교교회 담임)
- 이승재 목사님 부음에 부쳐
유권사님, 브라질의 1세대 선교사님들이 빠른 속도로 주님 곁으로 가십니다. 세월을 막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얼마 전 브라질선교의 신화적인 인물인 문명철 목사님이 하늘나라로 가신 후 계속 주님의 부르심에 응답하고 있습니다. 후배 선교사들이 좀 더 계셨으면 하는 마음으로 안타까워하는지 존경하는지도 모르게 하시고는 어느 날 갑자기 하나님의 날에 불러올리십니다.
정초에 자손들의 세배를 받으셨는데
최근에 우리 브라질선교사님 가운데 마당발로 통하는 이승재 선교사님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먼저 하늘나라로 가신 부인 곁으로 가셨습니다. 이제 그가 운영하던 현지인 신학교, 지원하던 교회, 공군 관련 선교회 등과 삼십년이나 한곳에 사신 아파트의 묵은 짐까지 잘 마무리해야 하는 일들은 아들들 몫입니다. 정초에 손자녀들과 이종원 목사의 세배를 받으시고 흐뭇해하시는 사진을 본지 불과 얼마 지나지 않아서 임종소식을 들었습니다. 연합교회 묘지에서 전도명 목사와 교회 상조회의 발 빠른 대처,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로 모이기 어려운 여건이 고려된 장지예배, 장지 까지 온 몇몇 선교사님들의 예배 후 뿔뿔이 흩어지는 신종 장례풍습 등이 참 생소했습니다. 사진으로 본 공동묘지의 성냥 곽처럼 파놓은 수십 줄의 묘지를 보면서 이것이 바이러스 세계 표정이구나 하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었는데 이승재 목사님의 묘지는 먼저간 아내의 묘지에 함께 합장하는 그런 여유가 있었습니다.
유권사님, 코로나바이러스가 ‘유월절 어린양의 문설주 피’처럼 선교사님들을 피해 가지는 않습니다만 이 목사님은 그냥 긴 세월을 가슴에 안고 “혹 밤에 혹 낮에 하면서” 주님의 부르심을 기다리다가 소망의 완성을 이룬 그런 완성이었습니다.
정초에 할아버지를 찾아 세배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고등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대학입시를 진행하는 큰아들 현수와 개척정신으로 충만해서 아마존 기숙학교에서 방학을 맞아 집에 온 큰딸 연수 그리고 부산에서 신앙을 배워 브라질 원주민 교회를 씩씩하게 섬기는 조문희 사모, 그리고 원주민 교회를 개척해서 교회건축을 한 후 빈민지역 특성을 살린 체육관을 짓고 있는 이종원 선교사 가족이 한통속이 되어 일찍 찾아뵙고 세배를 올린 후 덕담을 듣고 모시고 나가서 점심까지 함께 한 것이 살아생전의 마지막 만남입니다.
주님과 사모님 곁이 더 좋으셨던 이승재 목사님
그리고 며칠 후 문안전화를 받지 않는 아버지, 재차 삼차 전화를 받지 않아 달려간 아버님의 아파트는 문이 잠긴 상태였습니다. 이종원 목사가 평소에 갖고 있는 열쇠는 빗장 친 것까지 해결할 수 없어 열쇠공을 부르고 119를 부르고 그런 속 터지는 세상 절차를 거쳐서 이미 가신 소파에 편안하게 누워계신 이승재 목사님의 시신을 수습할 수 있었습니다. 삼십년 전에 브라질에 오셔서 신학교를 운영하고 현지인 교회를 개척해서 원주민 목사에게 이양하고 이종선 이종원 두 자녀를 목회자로 키워 당신 뒤를 잇게 하고, 최근까지도 왕성한 활동을 하던 그를 우리는 더 이상 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혼자계신 아버님이 못내 아쉬워서 공사 중인 체육관에 아버님 사실 공간을 만들어 함께 사실 계획을 하던 이종원 목사는 많이 아쉬워했습니다. 이 땅에서 아버님께 효자 노릇은 여기까집니다. “아들과 며느리와 함께 사는 것보다 하늘에 계신 어머니를 만나는 게 당신에게는 더 큰 소망이었다”고 생각하라고 위로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