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의 길에서) 꿈
2020/11/27 06:06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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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동순 권사(배우리한글학교장, 연합교회)
 
단어로 보아서는 무슨, 어떤 꿈을 말하는 것인지 알 수 없다. 잠자는 동안에 깨어 있을 때와 마찬가지로 여러가지 사물을 보고 듣는 정신 현상인지, 실현하고 싶은 희망이나 이상인지, 실현될 가능성이 아주 적거나 전혀없는 헛된 기대나 생각인지…… 이렇게 풀어 놓고 정리하니 어떤 꿈의 얘기를 하고 싶은지 분명해졌다. 두 번째 말, 실현하고 싶은 희망이나 이상에 대한 얘기를 해야겠다.
 말을 예쁘게하는 사람들의 공통점이 있다면 일단 말하는 사람의 얼굴 표정이 밝다. 어떤 말이든 듣기도 전에 상대의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져 버린다. 그렇다고 모두가 다 그런 것은 아니다. 담화가 시작되어 주고 받다가 돌연 자신의 말을 상대에게 전하려는 의도가 강해지면 표정은 밝음을 유지하지만 말에 뼈를 박아 상대방의 마음에 상처를 내고야 만다. 어색한 분위기로 대화가 잠시 중단되고 침묵이 흐르면 이내 언제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이 애써 밝은 표정을 지으며 뒷 수습에 들어간다. 이때에 꼭 하는 말이 있다. “왜 화를 내요, 농담으로 한 말인데” 이 말을 들은 상대방은 속 좁은 위인이 되고 또 한번 못이 박히게 된다. 이때는 대못이다. 말이라고 다 같은 말이 아닌데, 진실과 진정이 담긴 말이 자꾸 없어지고 필요없는 말들이 쏟아지는 언어의 홍수에 밀려가며 안타깝게 살아가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박완서씨의 단편소설 [시인의 꿈]은 살맛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말을 찾아 떠나는 어느 시인과 어린 소년을 주인공으로 내세운다. 공간적 배경으로 등장하는 고층 아파트는 문명의 자랑이요 인간의 신분 상승의 높낮이로 여기게 되고 인간의 이익을 우선한 인간들의 이기적인 행동은 자연적으로 생장해야하는 곤충들마저 이로운 것과 해로운 것으로 나눈 후 해로운 것들을 없애버린다. 그로 인해 생태계의 균형이 파괴되고 결과적으로 이로운 것마저 소멸해 버리고 만다. 이런 무분별한 인간들의 행동을 보고 노인(시인)과 이를 지켜보는 관찰자인 소년이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 보자는 꿈을 실현해 보려고 한다.
 이 뿐이 아니다. 자연적인 것들의 존재 가치가 인정되지 못하고 불필요하게만 여겨지는 인간들은 그들의 편의주의, 개인의 행복을 추구하기 위해서라는 이유로 불편한 생활을 견디지 못해 나와 다른 사람의 삶의 방식까지 못마땅해 한다. 또 남을 배려하지 못하는 이기적인 사고 방식과 잘못된 생활 습관들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기도
한다. 소설에 설정된 현대인의 이러한 생태를 주인공들이 대화로 잘 표현한 은유와 상징의 소설이다.
 [“할아버지는 왜 온종일 집을 비우고 돌아다니세요 ?” “말을 얻으로 다니지. 시는 말로 쓰지 않니?” “ 텔레비전과 라디오에 많은 말이 있는데 제가 그것들을 갔다 드릴게요” “ 시를 위한 말은 그런 물건에 대한 욕심과는 상관없는 마음의 슬픔, 기쁨, 바람 등을 나타내는 말이란다./온종일 헤매야 겨우 한두 마디 얻어 가질 정도로 드물어.”]
 시인의 꿈은 가슴이 울렁거리는 사람과 만나는 일이라고 말한다. 실현 가능성을 찾아 꿈을 포기하지 않는 시인, 순수한 어린 소년, 이 모두도 되지 못한다면 어떤 말을 찾아야 그저, 말을 제대로 하는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인지…… 작은 꿈을 꾼다는 것도 사실 버거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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