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성복 목사의 복음과 삶)예배에 목숨을 걸라고?
2020/09/03 09:36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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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성복 목사
 
페북친구가 올린 사진에 이런 내용이 있었다. “예배드리지 못하게 가로 막을 때 목숨 걸고 예배드리는 것이 신앙이다, 그러나 예배가 칼이 되어 목숨을 빼앗는다면 예배 안 드리는 것이 신앙이다.” 이 말은 나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신앙은 어떤 것인가? 다 다를 수 있다. 그러나 지금 예배드리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이슈가 되어 있다. 하나님의 사람이고 교회에 다니는 사람이라면 교회 나와서 예배드리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교회마다 “예배를 잘 드리자.”라는 권명성 설교를 많이 하고 있다. 맞는 말이다. 지금까지 몇 개월 동안 예배를 드리지 못했으니 교회를 책임지고 있는 목사라면 지도자들이라면 당연한 설교이고 권면이라고 생각한다.
 목사들이 이런 말을 참 많이 한다. “목숨 걸고 예배를 사수하라. 예배는 생명이다.” 그렇다. 예배는 생명이다. 예배를 통해서 생명이 살아나고 힘을 얻는다. 하나님이 그 자리에서 말씀으로 역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목숨 걸고라도 예배를 드려야 한다. 예수님께서도 요한복음 4장 23-24절에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하나님 아버지께서 예배 하는 자들을 찾으신다는 것이다. 그리고 예배드리는 자는 영과 진리로 예배를 드려야 한다고 강조하신 것이다. 그러기에 교회에서는 이 말씀을 통하여 성도들이 예배를 드려야 한다고 강조하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찾으시는 참 예배자가 되자고 강조하는 것이다.
 그렇다. 우리는 하나님이 원하시고 찾으시는 참된 예배자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이 시대는 어떤 시대인가? 코로나 19로 인하여 온 세계가 질병과 죽음의 암흑의 시대를 보내고 있다. 그래서 예전에 외쳤던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라는 말이 이렇게 바뀌었다. “뭉치면 죽고 흩어지면 산다.” 참 안타까운 말이다. 이와 같이 힘든 시기를 지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시대를 불문하고 예배는 반드시 드려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모여서 예배드림으로 인하여 생명이 죽어나간다면 이것을 진정으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모임이고 예배일까? 나와 하나님의 생각이 다르다고 하지만 내가 하나님이라면 지금 이 시대에는 질병이 확산되고 있다는 말을 들으면서 대면예배를 드리는 것보다 “조금 참으라. 조금만 기다려라. 너희가 기쁨으로 예배드릴 때가 이를 것이다.”라고 말씀을 하실 것이라 생각이 든다.
 왜 그런가? 그 무엇보다도 하나님과 예수님은 생명을 사랑하시고 아끼시기 때문이다. 그런데 대면예배를 드림으로 그 안에서 확진자와 사망자가 나온다면 어떨까? 하나님의 말씀을 보자. 호세아 6장 6절이다.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 여기에 나와 있는 “인애”와 “하나님을 아는 것” 하나님에 대한 충성과 헌신 뿐 아니라 이웃을 향한 진실한 사랑까지 포함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거짓된 의식과 허울 좋은 헌신을 역겨운 정도로 미워하신다. 그래서 이웃을 사랑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예배드린다는 것에만 신경을 쓴다면 하나님은 그런 것을 원치 않으신다는 것이다. 
 그럼 또 예수님의 말씀을 살펴보자. 마태복음 9장 13절이다.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여기에 나오는 “너희는 가서……. 배우라.”는 말은 랍비들이 성경을 더 공부해야 할 필요성이 있는 사람들을 깨우치고자 할 때 흔히 사용하던 말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 말을 사용하면서 모양만 갖추면 종교적인 임무를 다 한 것이라고 착각하였던 바리새인들을 깨우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말은 지금 우리에게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여호와를 섬기며 예배를 드린다고 하지만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을 외면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종교적 의식만 준수하면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자기가 의인인 것처럼 보이는 것인가? 그런데 예수님이 무엇을 말씀하시는가? 종교적인 의식보다는 사랑과 자비를 우선적으로 여기신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서 긍휼이 제사보다 먼저 베풀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생각해 보자. 지금 이 시대 우리의 초점은 어디에 있는가? 하나님이 원하시고 예수님이 원하시는 뜻을 따라 살아가고 있는 것인가? 혹시나 바리새인들처럼 의식과 형식에 따라 주일이니까 예배를 드려야 한다고 그것도 대면예배를 드려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지는 않는가? 이것이 생명을 사랑하시는 예수님이 아니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일까? 모여서 예배를 드림으로 나 뿐 아니라, 우리뿐 아니라 타인에게 전염되는 것으로 타인을 힘들게 하고 생명을 앗아간다면 하나님은 무엇이라 말씀을 하실까? 영혼을 구원하고 생명을 살려야 할 기독교가 이 대면예배를 드림으로 인하여 교인들이 교회를 떠나고 하나님을 불신하는 세계로 나아간다면 그 책임을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마태복음 18장 6절의 말씀이다.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작은 자 중 하나를 실족하게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이 그 목에 달려서 깊은 바다에 빠뜨려지는 것이 나으니라.”너무 심한 말이라고 생각하는가? 하나님의 마음이다.
 다시 한 번 깊이 생각해 보자. 정말 대면예배가 그렇게도 중요한가? 지금 이 마당에? 아니라고 본다. 또 이렇게 외치고 싶지는 않은가? “목숨 걸고 예배를 드려라. 이것이 신앙 있는 사람들의 행동이다.”라고.
 그것보다는 삶의 현장에서 예배드리는 것을 잘 알려 주자. 그래서 자신이 있는 그 자리에서 영과 진리로 예배를 드리는 참 예배자로 세우자.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YouTube : 강성복목사 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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