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철수 목사(익산봉곡교회 원로)
성도인 우리는 불신앙의 요소들을 버려야 한다. 이유는 그러한 요소들이 성도로서 바른 삶을 사는데 방해요소가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것들로 승리하는 삶을 살지 못하는 것이다. 왜 교회 지도자들이 세상에서 불미스런 사건들에 연루되어 많은 사람들에게 지탄을 받고 영광을 가리는가? 그 이유는 지도자가 되었지만 아직도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의 모습, 불신앙의 요소들을 버리지 아니해서 그와 같은 행동을 하므로 영광을 가리는 것이다. 그러므로 불신앙의 요소들을 버려야하는 것이다. 버릴 것 중에 게으름이 있다. 롬 12:11에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라”고 말씀하고 있다. 성도들의 교회생활에 있어서 게으름은 나쁜 습관임을 알아야 한다. 성도들은 신앙생활에 있어서 부지런해야 한다. 열심을 품고 주를 섬겨야 한다. 게으름은 악한 자의 습관이라고 할 수 있다. 마 25장 달란트 비유에서 한 달란트를 받고 그 한 달란트 그대로 가지고 온 종에게 주인은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고 책망하고 있음을 본다. 따라서 게으름은 악한 종에게서 나타나는 잘못된 습관인 것이다. 그 결과가 어떻게 되었는가? 게으른 악한 종은 바깥 어두운 데로 쫓겨나 거기에서 슬피 울며 이를 가는 불행한 자가 되고 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삶의 모습에서 이러한 게으름, 나태함, 안일함을 버려야 하는 것이다.
세상에서도 게으른 자는 인정을 받지 못한다. 게으름을 피우는 자를 누가 인정하겠는가? 게으른 자는 어디에서든지 누구에게나 인정을 받을 수 없다. 그러므로 성도인 우리는 어디에서나 항상 부지런한 모습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 인정을 받고 영광을 돌릴 수 있다. 신앙생활에 있어서 게으름은 더더욱 인정을 받지 못한다. 성경에서 게으름을 용납하지 않고 있다. 잠언 6:6에 “게으른 자여 개미에게로 가서 그 하는 것을 보고 지혜를 얻으라.”고 경계하고 있다. 게으른 것은 미물 곤충인 개미보다 못한 잘못된 악습이라는 의미다. 잠언 10:26에 “게으른 자는 그 부리는 사람에게 마치 이에 초 같고 눈에 연기 같으니라.”고. 게으른 자는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입히는 자라고 말씀한다. 이웃을 힘들게 하고 괴롭게 하는 자라는 말씀이다. 또한 잠언 12:24에 “부지런한 자의 손은 사람을 다스리게 되어도 게으른 자는 부림을 받느니라.”고 게으른 자는 가난하게 되고 다른 사람에게 부림을 당한다고 말씀한다. 성경에 어느 곳에서도 게으름을 인정한 곳이 없다. 특별히 성도인 우리는 믿음생활에 게으르지 말아야 한다. 열심을 품고 믿음생활에 임해야 한다. 먼저 예배생활에 열심을 다해야 한다. 예배는 하나님께 드리는 최고의 시간이요, 헌신이다. 결코 게으름을 피울 수 없는 영역이다. 예배생활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절대로 게으르지 말아야 한다. 예배드리는 삶에 최고의 가치를 두어야 한다. 무엇보다도 어떤 일 보다도 예배에 우선순위를 두어야 한다. 히 10:25에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그리하자.”라고 말씀한다. 주님의 이름으로 모이는 일에 열심을 다해야 하는 것이다. 북한의 지하교회 성도들은 생명을 내걸고 숨어서 지하 땅 굴에서 예배를 드린다. 발각되면 죽임을 당하든지 악명 높은 수용소에 수용되어 죽을 고생을 하지만 그러나 신앙을 지키며 예배를 드리는 것이 귀하고 중요하기 때문에 그들은 모든 불이익을 감내하면서 예배를 드리고 믿음을 지키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배 생활에 열심을 내고 최선을 다하자. 그리고 모든 주어진 직분과 사명을 감당함에 게을러서는 안 된다. 맡겨준 직분과 사명에 다섯 달란트 받은 자처럼 맡겨진 일에 충성을 다해야 한다. 게으름을 버리고 부지런한 삶이되기를 소원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