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광칼럼)
2019/11/07 22:28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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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광 교회 전면사진.jpg
고현묵 목사(신광침례교회 담임)
 
정답을 쓴 것이 선생님의 채점 실수로 오답으로 처리 되어서 해외 연수 장학생 선발에 자기 아이가 탈락하게 되었을 때, 부모들 가운데 95%가 항의한다고 대답을 했습니다. 하지만 반대로 오답을 쓴 것이 정답으로 처리돼서 합격했을 경우에는 그 절반도 안 되는 겨우 45% 만이 자녀의 탈락을 감수하고라도 정정을 요청하겠다는 답변을 했다고 합니다. 
 무려 50%의 차이!!! “이기심과 정의감” 또는 “개인의 이익과 공정한 정의”가 충돌할 때 우리의 판단력은 이렇게 흐려진다는 것이지요. 그 기사를 읽었을 때 문득 떠올랐던 생각은 그 응답자들 중에 크리스천 부모는 과연 몇 퍼센트나 자녀의 탈락을 감수하고라도 정정을 요청하겠노라 대답을 했을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누가복음에는 어떤 바리새인이 “하필이면 안식일에” 예수님을 식사에 초대를 했던 장면이 나옵니다. 그 자리에는 어떤 병자도 함께 초청이 되어 와 있었는데, 만일 예수님께서 그 병자를 고쳐주시면 안식일을 범했다고 비난하고, 고치지 않으시면 사랑이 없다고 비난하려는 목적으로 부른 것이었습니다. 그 때 예수님은 그런 바리새인과 그 상황을 지켜보던 주변 사람들에게 뜻밖의 질문을 하셨습니다. 
 ‘만일 안식일에 너희 아들이 우물에 빠졌다면 어떻게 하겠느냐’(눅14:5)라고 하시는 예수님의 질문에 시끌벅적하던 저녁식사 자리에는 일순간 무거운 침묵이 흘렀고 그때 상황을 누가는 “그들은 이 말씀에 대답할 수 없었다”라고 기록을 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자기들이 만든 규례가 절대 진리이며 그것을 지키는 일이 마땅한 도리라고 알았고 또 그렇게 가르쳤습니다. 하지만 “안식일에 당신 자식이 피를 철철 흘리고 있는 것을 보았을 때 과연 당신은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예수님의 질문, 곧 그 규례가 자기 자신에게 적용되어야 할 상황에 당신은 어떻게 할 것인가? 라는 그 질문 앞에서 바리새인들이 평소 주장하던 신앙과 신념은 깨지고 말았고, 그렇게 자기 자신 안에 있는 이율배반적인 모습을 본 순간 아무리 뻔뻔한 그들이라도 스스로 입을 다물 수 밖에는 없었던 것입니다. 
 오늘날 세상에서 교회와 교회 다니는 사람들을 향해서 비난하고 조롱하면서 ‘교회에 같이 다니자’, ‘함께 예수 믿자’고 하는 우리의 권면을 외면하는 이유 중의 큰 부분이 바로 여기에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개인의 유익과 믿음과 신앙 양심을 지키는 것, 이 둘 사이의 이해가 상충 할 때 과연 우리가 어떤 것을 선택해 왔고, 또 지금도 어떤 것을 선택하며 사는가에 따라 드러나는 우리의 이율배반적인 모습, 또는 신앙과 삶이 동떨어진 우리의 모습이 복음의 확장을 가로막고 있다는 것이지요. 
 우리의 성품은 죄로 오염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저절로 믿음의 선택과 실천을 할 수 있는 능력을 이미 상실한 존재들입니다. 그런 까닭에 믿음으로 내린 선택에 대한 실천은 언제나 우리의 강한 의지를 요구합니다. 이틀 후 주일에 그런 믿음의 의지를 발휘해서 예배에 참석하기를 선택하시고, 하나님을 만나는 귀한 복을 얻고 누리시기를 진심으로 권면하고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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