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주성결교회 양성환 선교사(오레곤선교교회 파송)
성례전
1. 성례전이란?
카톨릭에서는 일곱 가지 성례전을 시행하고 있다. 개신교회에서는 세례와 성만찬 두 가지만이 성례전으로 인정한다. 이 두 가지만이 성서적인 근거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성례전이란 무엇인가? 융엘은 “성례전이란 예수 그리스도의 역사 안에서 실행된 죄인들을 위한 하나님의 구원의 법의 종말론적 신비 이외의 다른 것이 아니다”라고 정의한다. 성례전의 정의는 어거스틴에 의해서 만들어졌다. “거룩한 것의 보이는 표지” 또는 “보이지 않는 은총의 보이는 형식”이다. 칼빈의 정의도 어거스틴과 유사하다. 성례전은 세례와 성만찬이다. 이는 교회의 예전이나 표지이다. 예수가 성례전의 근원이요 실체이다. 칼빈은 그리스도가 모든 성례전들의 질료 내지는 실체라고 했다. 루터에게 있어서 성례전은 말씀 아래에 있다.
말씀이 없이는 성례전은 아무것도 아니다. 만약 이 말씀이 부재하거나 구성적 기능이 등한시되면, 성례전적 사건은 인간의 행동으로서의 표지에 의해 지배된다. 루터에게서 신앙은 성례전들 특히 세례가 없이도 가능하다. 신앙은 성례전에 너무나도 중요하기에 성례전이 없이도 인간을 영원한 구원에 보존한다. 동시에 루터는 성례전은 하나님의 행동으로서 신앙에 앞서서 인간에게 주어졌다는 것이다. 루터는 성례전주의자로 간주된다. 그는 성례전이 죄사함을 주는 하나님의 행동으로 인정한다. 그의 공재설은 카톨릭의 화체설과 유사하다. 공재설은 성만찬의 떡과 포도주 안에 그리스도가 실재적이고 육신적으로 현존한다고 주장했다.
칼빈은 카톨릭의 객관주의와 츠빙글리의 주관주의를 공격하였다. 칼빈은 성례전에 아무것도 약속에 더하지 않으며 단지 우리가 그것을 믿게 하는 수단이라고 보았다. 두 가지 성례전들은 그리스도의 사역을 요약하는 데, 죄의 제거와 구속을 표상한다. 칼빈의 성례전론의 중요한 요소는 성령의 사역에 대한 강조이다. 성례전의 진정한 행위자는 말씀이 아니라 성령이다. 성령이 없이는 성례전은 열매가 없으며 무용지물이다. 그리스도는 성례전 안에서 성령을 통해 우리에게 진정으로 주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칼빈은 성례전주의에 속한다. 그는 세례와 성만찬을 우리의 신앙을 강화하는 보이지 않는 은총의 표지로서 간주한다.